경기도검도회

[렛츠검도] 대한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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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렛츠검도 댓글 0건 조회 2,979회 작성일 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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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 말하자면 칼싸움이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지만 동네아이들이 모여 나무막대기로 싸움놀이를 하던것, 그것이 바로 검도의 원형이다. 그 역사는 수천 년 또는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편싸움에, 심지어는 궁중에서까지 봉희(棒戱)나 격검(擊劍)이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졌던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BC 1500년경에 이미 막대기싸움(stick fighting)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아직도 당시의 부조물이 남아 있어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다. 또한 신라의 화랑도(花郞徒)에게 있어 격검이 필수적인 수련과목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 근거가 바로 <본국검법(本國劍法)>이다.

이<본국검법(本國劍法)>은 현존하는 세계최고(最古) 의 것으로 또 다른 놀라움이자 자랑스러운 우리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중국의 모원의(茅元儀)에 의해 전해진, <조선세법(朝鮮勢法)> 또한 고대검법의 정수로 현대검도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칼 (나무ㆍ돌ㆍ쇠 등의 재질에 관계없이)은 동물 사냥에서 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전쟁에서 살상용으로 혹은 호신용으로 수만 년 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시대와 나라에 따라 형태와 기법도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칼싸움놀이, 물론 그것이 본능적이고 모방적 행동의 표출일지라도 그 자체의 즐거움과 그리움 그리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순치(馴致)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칼싸움을 살상 목적이 아닌 심신(心身)의 수련을 위한 교육적 무희로, 다시 체육 경기로 자리를 잡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검도경기가 만들어진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으로, 아직 세계적인 스포츠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용구를 좀더 과학적으로 개량하고 경기방식도 현대화하여 보다 건전하고 가치 있는 체육경기로 활성화시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검(劍)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검은 석검(石劍)에서 동검(銅劍), 철검(鐵劍)으로 진화하였다. 특히 조선 정조 14년(1790년)에 간행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 수록된 본국검법(本國劍法)은 신라 화랑인 황창랑(黃倡郞)으로부터 기원된 세계 최고의 검법(劍法)이다.
검도(劍道)란 용어는 중국(中國)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 처음 나타나며,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치안(治安)의 필요성 때문에 경찰 교습 과목으로 실시된 것이 현대 검도의 효시이다.

 

검도(劍道)라는 용어는 중국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병기고(兵技攷)에 나오는 '검도삼십팔편(劍道三十八篇)'이라는 기록이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책의 '신ㆍ염ㆍ인ㆍ용(信廉仁勇)이 없이는 검(劍)을 논하지 말라' 라는 기록을 참고해 보면 중국에서는 지금부터 약 2,500년전인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검도가 독특한 정신세계를 이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고대의 책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우리 나라를 지칭하는 군자국(君子國)에 관한 기록에서, '군자국 사람들은 의관(衣冠)을 갖추고 칼을 차고 다니며.... 서로간에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라고 하여 이때 이미 칼의 문화가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칼의 우리 옛말은  인데 이는 '갈다'라는 동사가 명사화된 것으로 석기시대에 연원을 둔 매우 오래된 단어이다. 일본에서 검(劍)을 '쯔루기'라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말 '찌르기'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적 보고나 자료에 따르면 BC 900년경에는 요령지방에 비파형동검(琵琶型銅劍)으로 대표되는 독립된 청동기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후에 세형동검(細型銅劍)으로 발전된 우리들의 조상인 고조선(古朝鮮) 문화권이며, 이러한 내용은 <산해경>의 기록과도 일치되어 사실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훌륭한 칼의 문화를 이룩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검도경기의 원형은 격검(擊劍)이다.
중국의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에는 격검이 상대와 일 대 일로 겨루는 무술이라고 설명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자국의 예로 보아 일찍부터 이 격검이 행하여졌을 것이나 그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라 화랑들이 격검을 수련하였다는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김유신조에 보이는 '검술을 연마하여 국선이 되었다.'라는 내용에서 격검을 잘하지 못하면 최고의 화랑인 '국선'이나 '풍월주'에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는 화랑들이 월정(月庭)과 같은 일정한 수련장소에 모여 체계적으로 격검을 수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깊은 산악이나 동굴에 들어가 극기훈련과 심령훈련까지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검기(劍器) 역시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삼국 모두가 동양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이러한 칼의 기능과 기기(技器)가 후대에 일본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검도의 모태가 된 것이니, 이는 누구도 부인 못할 역사적 사실이다. 비록 근대 수백 년간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무(武)를 경원하고 칼에 관해 소홀히 하면서 자괴(自愧)에 빠져들었으나, 중국의 <무비지(武備志)>에 소개된 유일한 검법인 <조선세법(朝鮮勢法)>과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인 <본국검법(本國劍法)>은 세계검도사에 큰 빛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검도과 일본 것이라고 생각해서 백안시하거나 기피하려 드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이 검도를 스포츠로 개발한 것은 그들의 자랑이요. 그 뿌리가 우리에게 있음은 우리의 긍지이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24반 무예 중에 <왜검(倭劍)>을 특히 상세하게 수록한 우리 선조들의 참뜻을 잊어서는 안된다.

서양의 기사도를 대표하는 무술로서 현대 스포츠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펜싱'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시작은 이탈리아였고, 스페인 · 영국 · 프랑스 · 독일 등에서 수백 년간 계속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는데, 비록 경기용어는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있고 경기명칭도 나라에 따라 ESCRIME, SCHERMA, FENCING 등으로 각각 다르게 호칭되고 있으나 경기방식은 똑같다. 그리고 그들 국가들은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국제적인 규칙에 따라 나름대로의 기술개발을 하면서 함께 이 경기를 즐기며 키우고 있다. 돌이켜보면 현대의 검도경기가 시작된 것은 불과 100여년, 처음에는 명칭도 격검이었다. 대한제국은 일본이 개발한 경기방식을 바로 받아들여 군과 경찰에서 교과목으로 채택하고 군사훈련에 적용시켰으며 당시의 사립학교에서도 청소년들에게 보급, 권장하였다. 우리의 선각자들은 어렵던 시절 일제치하에서도 그맥을 이어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다.

 

검도(劍道)는 칼을 사용해온 유구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터득한 순치(馴致)된 경험들을 무덕(武德)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선지향적(善指向的) 의지이며, 교예ㆍ경기적(較藝ㆍ競技的) 수단을 동반한 극기복례(克己復禮)의 한 도(道) 이다.

 

검도는 체육경기의 한 종목이며 그 명칭이다. 칼의 역학적 원리를 응용하여 겨루기를 행하며, 정해진 경기·심판규칙에 의해 승패를 가르는 격투기적 개인경기이다.
교예(敎藝)와 경기의 구분에 따라 칼(刀·劍·木刀·竹刀)은 구별하여 사용한다.

 

검도의 목적은 ① 예의를 바르게 한다. 예의는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규범이 되는 상대적 행위이다. 검도에서 예의를 잃으면 오직 칼을 사용하는 투쟁만이 강조될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
②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려면 수련을 통하여 힘과 기량을 기르며, 어려움을 참고 이를 이겨내는 것을 보람과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
③ 신의를 지킨다. 칼은 올바른 일을 위하여 쓰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활인검(活人劍)이다. 부당한 것을 없애고 믿음으로 사귀며 헌신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인간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① 정신적 전통문화의 계승이다. 한국검도는 선도(仙道)에 따른 상무정신(尙武精神)과 풍월도(風月道)에 입각한 세속오계 등 고유의 전신세계에서 비롯한 충·효·예·도·덕의 전통사상을 포함한다.
② 심신의 조화이다.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 심기력일치(心氣力一致)의 수련과정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 과단성, 침착성 등 강인한 정신력과 함께 전신의 고른 발달과 특히 심폐기능의 강화로 지구력, 순발력, 민첩성 배양에 뛰어나다.
따라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건전한 정서배양과 예절교육에 큰 도움을 준다.

 

검도 용구에는 도복(道服), 호구(護具), 죽도(竹刀), 목검(木劍) 등이 있으며, 도복은 흰색 또는 감색, 상의와 하의로 구분된다. 호구는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호면(護面), 손목을 보호하는 호완(護腕), 가슴과 몸통을 보호하는 갑(甲), 허리 아래를 두르는 갑상(甲裳)으로 구분되며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죽도는 나이와 성별에 따라 그 길이와 무게가 규정되어있으며(대학, 일반의 경우 길이 120cm, 무게 500g 이상), 경기장 규격은 9∼11m 길이의 정사각형이다.
검도경기는 단체전(5인조, 7인조)과 개인전으로 구분된다. 승부는 죽도로 상대의 유효격자부위(머리, 손목, 허리, 목)를 정확하게 격자(擊刺)하면 득점으로 인정되며, 제한시간(5분원칙) 내에 두판을 선취한 자가 승리한다.

 

검도에 입문하여 3개월이면 기본을 습득하고 호구를 착용할 수 있다. 검도 단은 초단(初段)에서 9단까지 단위가 있으며, 하루 평균 1시간씩 1년 정도를 꾸준히 수련하면 초단에 입단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유단자 수는 약 10만명에 이르렀고, 여성 유단자 수도 3,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검도의 국제경기는 1965년 국제사회인클럽이 주동이 되어 시작된 것이 그 효시인데 이는 검도인끼리의 친선시합으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고 1970년에 정식으로 국제검도연맹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당시 회원국은 15개국이었다.

검도의 국제명칭은 한자로 '劍道' 영문으로 'Kendo' 이며, 국제연맹은 'Intenational Kendo Federation' 으로 모든 회원국은 이를 준수해야 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다. 다만 대한검도회는 국제적으로 영문표기를 'Korea Kumdo Association'으로 공인 받았다. 이는 우리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으로 국제연맹도 또한 모든 가맹국도 이를 인정하게 된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1970년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가 일본의 동경에서 개최된이래 3주년을 주기로 계속되고 있으며 체급이 없는 무체급 경기로 치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역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에서는 제4회ㆍ7회ㆍ8회ㆍ9회ㆍ10회ㆍ11회ㆍ12회 대회 등 7차에 걸쳐 준우승, 제5회ㆍ6회에는 3위를 했으며, 개인전에는 제2회에 이종림, 제6회에 김경남ㆍ박중채, 제7회에 김경남, 제10회에 박상섭, 제11회에 홍성수, 제12회에 임근배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1974년에 시작된 세계소년검도대회는 1980년 하와이에서 제3회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한국은 국제대회사상 처음으로 이 대회에서개인전 입상자 4인 중 우승 박중채, 3위 윤공균ㆍ전호문으로 개인전 메달을 휩쓸었으며 단체전에서 2위를 하여 종합우승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이 대회는 그후 폐지 되었다.

현재IKF 가맹국은 43개국이며 전세게 검도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현재 국제검도연맹의 부회장국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많은 회원국이 한국과 교류하기를 희망하고 대한검도회도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검도를 통해 국제친선을 도모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현재 검도는 아시아·미주·유럽 등 세계 40여개국에 보급되어 있으며 제1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가 1970년 일본에서 개최된 이래 매 3년마다 아시아·미주·유럽 순으로 돌아가면서 개최된다. 세계적으로 국제검도연맹(I.K.F. : International Kendo Federation)이 조직되어 있어 세계검도선수권대회 개최 및 주관, 학술연구 및 세미나 개최, 검도 보급, 정보 교류 등 주요 사업을 계획하고 관장한다.
우리 나라는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 제1회 대회부터 참가하여 88년(제7회 한국), 91년(제8회 캐나다), 94년(제9회 프랑스), 97년(제10회 일본) 대회에서 4연속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단체전·개인전에서 꾸준히 입상하여 검도 강국으로 성장하여 왔다.
또 지난 2000년 3월에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제11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서 우리 나라는 개인전에서 홍성수(부천시청) 선수가 개인전 3위에, 그리고 단체전에서는 결승에서 일본에게 아깝게 연전패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오늘날 여가 시간의 증가, 삶의 질적인 향상, 그리고 건강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인해 스포츠를 스트레스 해소, 정신단련 등 개인적인 만족을 얻기 위한 수단 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최근 생활체육으로 각광을 받게된 검도도 이런 측면에서 생활체육으로 큰 각광을 받게 되었다. 검도가 원래는 격렬한 운동이지만 보호장비가 확실하여 부상의 위험이 적고 각자의 힘에 맞게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생활체육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60만의 검도 인구가 각 도장 및 사회센타, 동우회 모임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회에 등록된 단체팀만도 400여개 팀이 넘는다. 또한 전국적으로 약 400여개의 사설도장에서 검도를 가르치고 있다. 각 도장에는 검도 입문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어 한국 검도의 앞날을 밝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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